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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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06 14:05 조회17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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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 311호인 대웅전,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 최근에는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http://www.bongjeongsa.org 054-853-4181
□ 봉정사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소유자 : 봉정사
* 내용요약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한 봉정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인 672년에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1972년 극락전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대덕의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정사는 흔히 ‘고건축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 다포양식의 전형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고금당, 화엄강당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터널과 일주문에서 안내판까지의 참나무 그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천등산 정상 천둥굴로 이어지는 등산길이 봉정사 관람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 길 양옆의 소나무 숲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다 보면 왼쪽 편 나무 숲사이로 작은 정자가 하나 보일 것이다. 이것이 명옥대(문화재자료 제174호)이다. 명옥대는 원래 낙수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계 이황 선생께서 이곳에 수양차 오셨다가 이름이 너무 밋밋하다 하여 ‘물 떨어지는 소리가 옥 굴러가는 소리와 같다’고 명옥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명옥대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앞에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불국정토에 들어서면 참나무 가지가 하늘을 가려 어두운 터널을 만들어 준다. 이 터널 아래서 마음을 잠시 가다듬는 일도 좋을 것 같다.
현재 봉정사는 극락전과 영산암을 해체 보수하는 중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이라도 보수를 하지 않으면 그 수명을 오래 할 수 없다. 극락전의 경우도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지금이 또 그 보수 시기가 된 것이다. 관람할 때 조금의 불편함이 있겠지만 조상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는 작은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름에 얽힌 두가지 창건설화
영주 부석사에 자리 잡은 의상이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도력으로 날려보내니, 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지었다. 그래서 ‘봉황(鳳)이 머문 자리 (停)’라 해서 봉정사(鳳停寺)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봉정사가 자리 잡은 산은 원래 대망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산 중턱의 동굴에서 능인 스님이 도를 얻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던 중 어여쁜 여인이 수행을 방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능인 스님은 그 유혹을 물리쳤다. 이에 그 여인은 선녀로 변하여 수행을 시험하고자 했노라며 동굴 안을 불로 밝혀 주었다. 그래서 그 굴은 ‘하늘에서 내린 등불’이라는 의미로 천등굴이 되었으며 봉정사가 있는 산은 천등산(天燈山)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법당에 어떤 부처님이 살고 계실까?
법당의 본래 의미는 설법과 같은 교화를 행하던 곳이지만 이제는 불전을 법당이라는 말로 쓴다. 어느 부처님, 혹은 어느 보살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불전의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
1. 대웅전 : 석가모니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 하는데 대웅은 석가모니 부처 님의 다른 호칭이며, 큰 영웅이라는 뜻과 같다.
2. 비로전 :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며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3. 극락전 : 서방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며 극락보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 이라고도 한다.
4. 미륵전 :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신 미륵불을 봉안한 법당인데, 미륵불이 계시는 세계를 용화 세계라 하기 때문에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5. 약사전 : 중생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중생을 구해주시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법당이며 만월전이라고도 한다.
6. 관음전 :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원통전, 원통보전 또는 자비전이라고도 한다.
7. 지장전 :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명부전이라고도 한다.
8. 팔상전 :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여덟 폭의 그림으로 모시고 중앙에 석가모 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 봉정사에 숨겨진 보물들
진달래 꽃길 : 봄기운에 맘이 설레어 찾은 봉정사라면 빼놓지 말고 가야 할 곳이 있다. 영산암 왼쪽으로 오르면 개목사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진달래 만발한 꽃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봄의 정취를 가득 느껴보는 것도 봉정사를 기억 한 페이지에 남겨 놓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천등산 등산로
- 천등굴 가는길 : 봉정사 창건의 전설이 담겨진 천등굴을 찾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영산암 좌측 길을 따라 개목사를 지나 천등굴을 만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봉정사 경내에 들어가기 전, 좌측의 지조암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소요시간은 2시간(3~3.5㎞) 정도이다.
- 천등산 등산로 :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1코스는 주차장 왼쪽 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산등 성에 위치한 관음굴을 거쳐 수리재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3시간 (6㎞)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2코스는 주차장 중앙으로 난 표지판을 따라 오르면 되는데 바로 수리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로 2시간 30분(4 ㎞)정도 걸린다.
□ 봉정사(극락전)
* 지정 : 국보 제15호(1962. 12. 20)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901
* 소유자 : 봉정사
* 규모 : 3×3칸
* 형태 및 구조 : 맞배기와 주심포(柱心包)집
* 내용요약 :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난 1972년 극락전을 해체하여 보수공사를 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는 “신라문무왕 때 능인 대덕에 의하여 창건되고 고려 이후 여러 스님에 의하여 무려 여섯 차례나 중수를 하였으나 또 다시 지붕이 새고 초석이 허물어져 지정 23년(공민왕 12년 1262년)에 예안의 용수사 축담스님이 중수한 것을 지금에 와서 다시 지붕이 허술하여 수리한다.”고 적고 있다.
이로써 이 때까지 최고의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던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로 확인되었다. 극락전의 또 다른 가치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의 고형과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곡면으로 내반되어 있는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에 가까운 복화반대공을 배열하고 있는 점, 첨차 끝에 쇠서를 두지 않은 점 등이 극락전의 간결하면서도 각 부재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건물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 앞마당에는 규모가 작은 석탑이 하나 있다. 가람 배치나 조성양식으로 보아서 건립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중기단의 방형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제감율이 적고 옥개석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봉정사(대웅전)
* 지정 : 국보 제55호(1963. 1. 21)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901
* 소유자 : 봉정사 * 규모 : 3×3칸
* 형태 및 구조 : 단층팔작지붕 와가 다포집
*내용요약 :
봉정사의 본전인 대웅전은 고려말, 조선 초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 있는 극락전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우리 한옥의 멋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1999년부터 해체·보수작업을 했는데, 이때 후불 탱화 뒤에 벽화를 발견하였다. 이 후불 벽화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림의 표현기법이나 구도 색조에 고려 불화의 특징을 담고 있어 대웅전의 건축 연대를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려 보기도 한다. 극락전이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 지붕의 형태라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극락전이 지붕의 무게를 받쳐주는 공포를 기둥 위에만 두는 주심포 방식을 사용하였다면, 대웅전은 기둥과 기둥을 이어 주는 평방이나 창방 위에도 공포를 두는 다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두 건물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주심포 방식의 변형인 익공 방식을 사용하여 건축하였다. 즉 고려 초의 건축양식인 주심포 방식, 고려말 조선초에 주로 사용한 다포양식, 조선 중기에 발달하기 시작한 익공 양식의 건물이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봉정사에 오면 우리 한옥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고건축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이다.
□ 봉정사 만세루(萬歲樓)
* 지 정 : 유형문화재 제325호
* 내용요약 :
만세루는 사찰의 중심공간인 본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서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곧 속세를 떠나 온갖 번뇌와 망상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부처의 세계로 귀의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누문은 대부분 이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 운판, 범종, 법고 등으로 불리는 불교의 사물(四物)을 걸 수 있는 종루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 봉정사 삼층석탑
* 지정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82호 (1984. 12. 29)
* 소유자 : 봉정사(鳳停寺)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901
* 수량 : 1기 * 규격 : 총높이 3.18m
* 형태 및 구조 : 화강석재탑
* 내용요약 :
봉정사를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으로 나누었을 때 이탑은 고금당과 함께 극락전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가람 배치나 조성양식으로 보아서 건립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중 기단의 방령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율이 적고 옥개석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 일부는 남아 있지 않다. 탑의 총 높이는 318cm이다.
□ 봉정사 화엄강당
* 문화재분류 : 건물
* 분류 : 보물 448호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내용요약 :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당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온돌방 구조를 갖춘 건물이다.
□ 봉정사 고금당
* 문화재분류 : 건물
* 분류 : 보물 449호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내용요약 :
맞배지붕의 주심포양식으로 원래는 불상을 모시는 부속전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 요사(스님들이 기거하는 집)로 쓰인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광해군 8년(1616)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 봉정사(일주문)
* 내용요약 :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자, 사찰의 경계이다. 곧 일주문을 지나는 것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있다. 이것은 한마음 (一心)을 뜻하는 것으로, 항상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봉정사는 불교사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건립된 사찰이다.
그러나 화엄의 철학적 체계가 깨달음의 세계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수행자의 수행단계별 공간배치인 사찰구도와 배치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화엄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의상대사는 수행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정토사상을 적절하게 조합시켜 사찰구도를 잡고 건물과 계단을 배치하였다.
3단계의 계단과 덕휘루를 통과하는 것은 부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며 이는 수행자의 수행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수행자는 이러한 수행의 계단과 덕휘루를 거쳐 깨달음의 세계, 곧 부처를 만날 수 있다.
□ 봉정사(영산암)
* 내용요약 :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영산암은 대웅전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한참 오르면 나타난다.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우화루라는 현판이 달린 누각인데 원래 극락전 앞에 있었던 누각이다. 이 ‘우화(雨花)’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득도하신 후 법화경을 처음으로 설법하셨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우화루라는 현판을 달 수 있는 곳은 높은 경지의 고승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한다.
우화루 아래를 지날 때에는 키 큰 사람이나, 지체가 높으신 분이나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지나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 아래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숙인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모양 좋은 소나무 한 그루와 큰 바위 하나가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나타내 준다. 전면의 법당과 삼면으로 둘러싼 오사채가 일반 여염집 같은 안 마당을 만들어 준다.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은 흙으로 조성된 토불로서 규모가 크면서도 왠지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또한 법당 외벽에는 우리나라 민화에나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의 그림이 그려져 눈길을 끈다. 요사채는 신발을 벗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또 다른 특색이다. 이곳은 지금도 스님들의 수행처로서 조심스럽게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마루에 조용히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번 젖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 311호인 대웅전,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 최근에는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http://www.bongjeongsa.org 054-853-4181
□ 봉정사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소유자 : 봉정사
* 내용요약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한 봉정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인 672년에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1972년 극락전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대덕의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정사는 흔히 ‘고건축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 다포양식의 전형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고금당, 화엄강당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터널과 일주문에서 안내판까지의 참나무 그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천등산 정상 천둥굴로 이어지는 등산길이 봉정사 관람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 길 양옆의 소나무 숲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다 보면 왼쪽 편 나무 숲사이로 작은 정자가 하나 보일 것이다. 이것이 명옥대(문화재자료 제174호)이다. 명옥대는 원래 낙수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계 이황 선생께서 이곳에 수양차 오셨다가 이름이 너무 밋밋하다 하여 ‘물 떨어지는 소리가 옥 굴러가는 소리와 같다’고 명옥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명옥대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앞에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불국정토에 들어서면 참나무 가지가 하늘을 가려 어두운 터널을 만들어 준다. 이 터널 아래서 마음을 잠시 가다듬는 일도 좋을 것 같다.
현재 봉정사는 극락전과 영산암을 해체 보수하는 중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이라도 보수를 하지 않으면 그 수명을 오래 할 수 없다. 극락전의 경우도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지금이 또 그 보수 시기가 된 것이다. 관람할 때 조금의 불편함이 있겠지만 조상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는 작은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름에 얽힌 두가지 창건설화
영주 부석사에 자리 잡은 의상이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도력으로 날려보내니, 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지었다. 그래서 ‘봉황(鳳)이 머문 자리 (停)’라 해서 봉정사(鳳停寺)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봉정사가 자리 잡은 산은 원래 대망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산 중턱의 동굴에서 능인 스님이 도를 얻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던 중 어여쁜 여인이 수행을 방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능인 스님은 그 유혹을 물리쳤다. 이에 그 여인은 선녀로 변하여 수행을 시험하고자 했노라며 동굴 안을 불로 밝혀 주었다. 그래서 그 굴은 ‘하늘에서 내린 등불’이라는 의미로 천등굴이 되었으며 봉정사가 있는 산은 천등산(天燈山)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법당에 어떤 부처님이 살고 계실까?
법당의 본래 의미는 설법과 같은 교화를 행하던 곳이지만 이제는 불전을 법당이라는 말로 쓴다. 어느 부처님, 혹은 어느 보살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불전의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
1. 대웅전 : 석가모니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 하는데 대웅은 석가모니 부처 님의 다른 호칭이며, 큰 영웅이라는 뜻과 같다.
2. 비로전 :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며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3. 극락전 : 서방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며 극락보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 이라고도 한다.
4. 미륵전 :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신 미륵불을 봉안한 법당인데, 미륵불이 계시는 세계를 용화 세계라 하기 때문에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5. 약사전 : 중생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중생을 구해주시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법당이며 만월전이라고도 한다.
6. 관음전 :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원통전, 원통보전 또는 자비전이라고도 한다.
7. 지장전 :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명부전이라고도 한다.
8. 팔상전 :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여덟 폭의 그림으로 모시고 중앙에 석가모 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 봉정사에 숨겨진 보물들
진달래 꽃길 : 봄기운에 맘이 설레어 찾은 봉정사라면 빼놓지 말고 가야 할 곳이 있다. 영산암 왼쪽으로 오르면 개목사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진달래 만발한 꽃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봄의 정취를 가득 느껴보는 것도 봉정사를 기억 한 페이지에 남겨 놓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천등산 등산로
- 천등굴 가는길 : 봉정사 창건의 전설이 담겨진 천등굴을 찾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영산암 좌측 길을 따라 개목사를 지나 천등굴을 만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봉정사 경내에 들어가기 전, 좌측의 지조암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소요시간은 2시간(3~3.5㎞) 정도이다.
- 천등산 등산로 :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1코스는 주차장 왼쪽 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산등 성에 위치한 관음굴을 거쳐 수리재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3시간 (6㎞)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2코스는 주차장 중앙으로 난 표지판을 따라 오르면 되는데 바로 수리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로 2시간 30분(4 ㎞)정도 걸린다.
□ 봉정사(극락전)
* 지정 : 국보 제15호(1962. 12. 20)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901
* 소유자 : 봉정사
* 규모 : 3×3칸
* 형태 및 구조 : 맞배기와 주심포(柱心包)집
* 내용요약 :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난 1972년 극락전을 해체하여 보수공사를 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는 “신라문무왕 때 능인 대덕에 의하여 창건되고 고려 이후 여러 스님에 의하여 무려 여섯 차례나 중수를 하였으나 또 다시 지붕이 새고 초석이 허물어져 지정 23년(공민왕 12년 1262년)에 예안의 용수사 축담스님이 중수한 것을 지금에 와서 다시 지붕이 허술하여 수리한다.”고 적고 있다.
이로써 이 때까지 최고의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던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로 확인되었다. 극락전의 또 다른 가치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의 고형과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곡면으로 내반되어 있는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에 가까운 복화반대공을 배열하고 있는 점, 첨차 끝에 쇠서를 두지 않은 점 등이 극락전의 간결하면서도 각 부재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건물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 앞마당에는 규모가 작은 석탑이 하나 있다. 가람 배치나 조성양식으로 보아서 건립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중기단의 방형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제감율이 적고 옥개석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봉정사(대웅전)
* 지정 : 국보 제55호(1963. 1. 21)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901
* 소유자 : 봉정사 * 규모 : 3×3칸
* 형태 및 구조 : 단층팔작지붕 와가 다포집
*내용요약 :
봉정사의 본전인 대웅전은 고려말, 조선 초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 있는 극락전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우리 한옥의 멋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1999년부터 해체·보수작업을 했는데, 이때 후불 탱화 뒤에 벽화를 발견하였다. 이 후불 벽화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림의 표현기법이나 구도 색조에 고려 불화의 특징을 담고 있어 대웅전의 건축 연대를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려 보기도 한다. 극락전이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 지붕의 형태라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극락전이 지붕의 무게를 받쳐주는 공포를 기둥 위에만 두는 주심포 방식을 사용하였다면, 대웅전은 기둥과 기둥을 이어 주는 평방이나 창방 위에도 공포를 두는 다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두 건물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주심포 방식의 변형인 익공 방식을 사용하여 건축하였다. 즉 고려 초의 건축양식인 주심포 방식, 고려말 조선초에 주로 사용한 다포양식, 조선 중기에 발달하기 시작한 익공 양식의 건물이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봉정사에 오면 우리 한옥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고건축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이다.
□ 봉정사 만세루(萬歲樓)
* 지 정 : 유형문화재 제325호
* 내용요약 :
만세루는 사찰의 중심공간인 본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서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곧 속세를 떠나 온갖 번뇌와 망상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부처의 세계로 귀의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누문은 대부분 이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 운판, 범종, 법고 등으로 불리는 불교의 사물(四物)을 걸 수 있는 종루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 봉정사 삼층석탑
* 지정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82호 (1984. 12. 29)
* 소유자 : 봉정사(鳳停寺)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901
* 수량 : 1기 * 규격 : 총높이 3.18m
* 형태 및 구조 : 화강석재탑
* 내용요약 :
봉정사를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으로 나누었을 때 이탑은 고금당과 함께 극락전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가람 배치나 조성양식으로 보아서 건립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중 기단의 방령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율이 적고 옥개석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 일부는 남아 있지 않다. 탑의 총 높이는 318cm이다.
□ 봉정사 화엄강당
* 문화재분류 : 건물
* 분류 : 보물 448호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내용요약 :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당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온돌방 구조를 갖춘 건물이다.
□ 봉정사 고금당
* 문화재분류 : 건물
* 분류 : 보물 449호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내용요약 :
맞배지붕의 주심포양식으로 원래는 불상을 모시는 부속전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 요사(스님들이 기거하는 집)로 쓰인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광해군 8년(1616)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 봉정사(일주문)
* 내용요약 :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자, 사찰의 경계이다. 곧 일주문을 지나는 것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있다. 이것은 한마음 (一心)을 뜻하는 것으로, 항상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봉정사는 불교사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건립된 사찰이다.
그러나 화엄의 철학적 체계가 깨달음의 세계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수행자의 수행단계별 공간배치인 사찰구도와 배치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화엄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의상대사는 수행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정토사상을 적절하게 조합시켜 사찰구도를 잡고 건물과 계단을 배치하였다.
3단계의 계단과 덕휘루를 통과하는 것은 부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며 이는 수행자의 수행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수행자는 이러한 수행의 계단과 덕휘루를 거쳐 깨달음의 세계, 곧 부처를 만날 수 있다.
□ 봉정사(영산암)
* 내용요약 :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영산암은 대웅전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한참 오르면 나타난다.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우화루라는 현판이 달린 누각인데 원래 극락전 앞에 있었던 누각이다. 이 ‘우화(雨花)’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득도하신 후 법화경을 처음으로 설법하셨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우화루라는 현판을 달 수 있는 곳은 높은 경지의 고승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한다.
우화루 아래를 지날 때에는 키 큰 사람이나, 지체가 높으신 분이나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지나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 아래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숙인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모양 좋은 소나무 한 그루와 큰 바위 하나가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나타내 준다. 전면의 법당과 삼면으로 둘러싼 오사채가 일반 여염집 같은 안 마당을 만들어 준다.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은 흙으로 조성된 토불로서 규모가 크면서도 왠지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또한 법당 외벽에는 우리나라 민화에나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의 그림이 그려져 눈길을 끈다. 요사채는 신발을 벗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또 다른 특색이다. 이곳은 지금도 스님들의 수행처로서 조심스럽게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마루에 조용히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번 젖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